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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0. 20世 〉34. <부정공>초산처사공휘득호묘표(樵山處士公諱得浩墓表)
1. 문헌 목록 〉20. 20世 〉36. <부정공>문장공휘현호묘비문(文壯公諱賢浩墓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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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부정공>귀계공휘태석묘갈명(龜溪公諱泰錫墓碣銘)
龜溪公諱泰錫墓碣銘 昇平上檢村後枕庚而封處士龜溪趙公諱泰錫子聖仰夫人耽津崔氏之藏公生 純祖癸亥卒今上癸酉幼上學經子粗通爲無養起治産身屨妻織漁樵供旨推其餘置先墓祭田喪致哀後喪逾始喪不以老懈諸弟同飢飽視諸侄如子從父失産經紀以立家窮族皆收恤曰祖宗視均子孫薄於族忘其祖有詩曰人不能人人不人族非睦族族非族修己敦宗意溢辭表可與人爲元符足裨世敎訓子有言曰不必遠法前賢相好湛樂祖德可修儉奢興替多財損益諄諄規警家道雍睦子弟有學皆公遺敎晩築龜溪上與同志吟哦與物無競盖淳古之君子也趙系玉川高麗檢校璋生版圖判書洪珪忠獻元吉以功封玉川府院君副正瑜短喪之日獨行三年我朝徵不起旌閭兵使崇文與子哲山六臣同死諡節愍子 贈敎官並享莊陵墻世官蔭文行別提晋老取宗姪琯爲後參議斯文其九世於節愍兄也高祖耘畹曾祖周命即湛樂以從子弘淳後考在壽妣善山柳氏復霖崔氏父洙擎孝舅姑敬君子敎子姪實公配德男秉善秉敎秉憲婿金在廷許求秉憲老而好學克承父訓俾爲銘曰董生之田可耕董生之水可漁具甘旨上堂兼讀董生書訓子姪以義方敦宗族無親疎衰季未易遇殆古之人歟 幸州 奇宇萬 撰 귀계공휘태석묘갈명(龜溪公諱泰錫墓碣銘) 승평(昇平) 위 검촌(檢村) 마을 경좌갑향(庚坐甲向)의 무덤은 처사(處士) 조공 태석(趙公泰錫)과 부인(夫人) 탐진최씨(耽津崔氏)의 묘(墓)이다. 공은 純祖 癸亥年(一八O三)에 태어나 고종(高宗) 계유(癸酉)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입학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까지 대강 읽었으나 그러나 부모 봉양을 염려한 나머지 학업(學業)을 단념하고 가업(家業)에 몸담고 말았다. 그리하여 몸소 신 삼고, 아내는 길삼을 하는 등 정성(精誠)을 다하여 그 부모를 모시고 여유가 있으면 선조(先祖)의 제전(祭田)을 마련하였다. 상(喪)을 당하였을 때는 그 슬픔을 다하였고, 혹시라도 몸이 늙었다 하여 그것으로 게을리 하지도 않았다. 여러 아우들과 어려운 생활을 함께 하면서 많은 조카들을 자식처럼 여겼고 친족(親族)들마다 도움을 주었는데 또 이렇게 말하였다. 『선조(先祖)에게는 모두 다 같은 자손인데, 그 자손이 되어 종족(宗族)을 박대한다면 이는 그 선조를 잊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또 그의 시(詩)에 보면, 『사람이 능히 사람 노릇을 못하면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니고, (人不能人人不人) 종족(宗族)이 되어 종족간에 화목(和睦)하지 못한다면 종족이라고는 하나 종족이 아니다(族非睦族族非族)』 라고 하였다. 이렇듯 말마다 수기(修己) 돈종(敦宗)하는 뜻이 밖으로 넘쳐흘러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후세의 교육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그는 또 아들에게 교훈(敎訓)을 주어 말하기를, 『멀리 있는 전현(前賢)들 배우려 하지 말고 상호담락(相好湛樂)하여 선조(先祖)의 덕(德)을 빛나게 할 것이며 검소하여 흥(興)하게 하고 사치하여 망(亡)하게 하지 말라, 또 재물이 너무 많으면 손익(損益)이 뒤따를 것이다.』 하고 자세히 말하여 가르치니 온 집안이 화목하였고, 자제들의 학문도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만년(晚年)에는 귀계(龜溪)가에다, 정자를 지어놓고 뜻이 맞는 이와 함께 시(詩)를 읊조리며 세상밖의 일을 잊은 채 지냈으니 순전한 옛 군자(君子)와 같았다. 조씨는 옥천(玉川|)이 본관이며 고려 검교(高麗檢校) 장(璋)이 시조로서 판도판서 홍규(版圖判書洪珪)를 낳았다. 충헌 원길(忠獻元吉)은 공훈(功勳)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封)하였다. 부정 유(副正瑜)는 고려말(高麗末) 一년상만을 주장하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三년상을 마쳤고 조선(朝鮮) 조정(朝廷)에서 불렀지만 나가 벼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려(旌閭)가 있다. 兵使 崇文은 그 아들 철산(哲山)과 世祖때 사육신과 함께 죽으므로 아버지는 절민(節愍)이란 시호(諡號)를 아들은 교관(敎官)이란 증직을 받았으며 장릉단(莊陵墻)에 배향(配享)되었다. 그리하여 대대로 음직(蔭職)을 받고 또 문행(文行)이 있었다. 별제(別提)를 지낸 진로(晋老)는 종질 관(宗姪琯)을 후사(後嗣)로 삼았는데 참의 사문(參議斯文)은 그의 구세조(九世祖)이며 절민(節愍)의 형이다. 고조(高祖)는 운완(耘畹)이며 증조(曾祖) 주명(周命)의 호는 담락(湛樂)인데 종자 홍순(從子弘淳)으로 후사(後嗣)를 삼았고 고(考)는 재수(在壽)이며 비(妣)는 선산유씨(善山柳氏) 부림(復霖)의 딸이요 배는 최 수경(崔洙擎)의 딸인데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군자(君子)를 공경하며 자질(子姪)를 가르치는데 공(公)과 덕(德)을 나란히 했다. 아들은 병선(秉善)·병교(秉敎)·병선(秉憲)이며 사위는 김 재정(金在廷)·허 구(許 求)이다. 병헌(秉憲)이 늙어서도 학문을 좋아하고 부모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다. 다음과 같이 銘한다. 동생(董生)이 밭 갈 때 처럼、 董生之田可耕 동생이 물에 고기 낚을 때 처럼。 董生之水可漁 기름진 음식으로 부모 봉양하고、 具甘旨上堂 겸하여 동생의 글까지 읽은 공이여、 兼讀董生書 아들 조카는 옳음을 가르키고、 訓子姪以義方 종족(宗族)의 화목에는 친소가 없었으니。 敦宗族無親疎 쇠퇴한 세상 보기 어려운、 衰季未易遇 그대는 옛 사람이구려! 殆古之人歟 幸州 奇宇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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